1999-06-05 『국민일보』 31면


[내가 아끼는 것들]

고려대 민족문화연 김현 박사 ‘목관악기’


                김혜림 기자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연구교수이며 대덕 연구개발정보센터 정보지원부장인 김현 박사(41)는 최근 방대한 분량의 조선왕조실록을 CD롬에 담아내 역사학계와 출판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고전과 컴퓨터를 연결해 여느 사람이 넘보기 어려운 작업을 해낸 김박사는 취미활동에도 의욕적이고 취미 대상도 조금 이색적이다. “목관악기를 좋아해 해외 출장 때마다 한 두 점씩 모으기 시작한 게 벌써 10여 점이나 되었어요.”

  집안 여기저기 놓아두고 눈에 띌 때마다, 시간날 때마다 연주를 해서 손때가 묻은 악기들. 수집가 수준은 아니라고 자신을 소개한 김박사는 “가지고 있는 악기들은 모두 연주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처음 살 때는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 고물이었어요. 덕분에 골동품들을 싼값에 살 수 있었지요.”

  어떤 것들은 한두달 새 고치지만 1년 넘게 씨름하다 결국 전문가 손을 빌려 고친 것들도 있단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담고 있고, 저마다 소리가 달라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중에도 애착이 더 가는 것들이 있다고 한다. 96년 런던에서 구입한 우드 플루트, 97년 미국 하버드대 교환교수로 갔을 때 보스톤 스키너 경매장에서 산 우드 클라리넷, 그리고 같은해 스웨덴에서 산 까마귀 오카리나를 특히 아낀다. 도자기로 구운 2개의 오카리나는 큰 까마귀와 작은 까마귀 모양으로 언뜻 보기에는 악기로 보이지 않는다. 서양전통악기로 애절하면서도 깊은 음감이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김박사가 관악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 때. 대학에 입학한 뒤 피아노를 배웠지만 손쉽게 가지고 다니면서 마음 내킬 때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찾았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리코더. 리코더를 배운 뒤 연주법이 비슷한 플루트 색소폰 클라리넷 등을 독학으로 익혔다.

  “5년쯤 뒤에 가족음악회를 열어보려고 합니다. 아들 민(14·과천중 1)이가 리코더를, 딸 영(12·청계초교 5)이가 피아노와 플루트를 연주하지요”

  플루트 클라리넷 색소폰 리코더 등 여러가지 악기를 만지는 김교수에 대해 동갑나기 아내 이순구씨(국사편찬위원회 판사연구사)는 “여러 남자와 사는 것처럼 변화를 즐길 수 있어 좋다”며 남편의 취미생활을 적극 도와주고 있다.